조선 초기 제물포로 불리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1883년(고종 20년) 조일수호조약 (제물포조약)에 의하여 부산항과 원산항에 이어 대한제국에서 세번째로 강제 개항되었다. 1911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제1독이 축조되었으나, 이후 1974년에는 인천내항 전체를 선거화하였고, 현대식 갑문이 건설되면서 5만톤급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연간 하역능력은 972만 8,000톤으로 증가하였다.
수심이 얕은 서해안의 특성 상 초대형 선박이나 특수 선박이 드나들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갑문을 지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수심이 깊고 항구가 넓은 광양항이나 부산항에 비하여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 초기 제물포로 불리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1883년(고종 20년) 조일수호조약 (제물포조약)에 의하여 부산항과 원산항에 이어 대한제국에서 세번째로 강제 개항되었다. 1911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제1독이 축조되었으나, 이후 1974년에는 인천내항 전체를 선거화하였고, 현대식 갑문이 건설되면서 5만톤급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연간 하역능력은 972만 8,000톤으로 증가하였다.
수심이 얕은 서해안의 특성 상 초대형 선박이나 특수 선박이 드나들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갑문을 지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수심이 깊고 항구가 넓은 광양항이나 부산항에 비하여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