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풍수지리와 시원문명

2014.11.25 21:55

씨밀레 조회 수:2506

IMG_1416917223.jpg김포에 손돌목이라 하는 곳이 있다. 그런데 왜 손돌목이라고 이름을 붙쳤나?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 북악산 밑으로 천도(遷都)를 했다. 당시 천도를 할 시에 도읍지를 계룡산 신도안으로 하느냐, 한양으로 하느냐, 공론이 분분했다. 신도안에 가보면 그때 나라의 사령탑을 짓는다고 깎아 놓은 주춧돌 같은 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  터 닦던 데를 파 보면 볏짚 한 켜 깔고 다시 황토를 한 켜 깔고, 그렇게 정토(淨土)를 해 놓았다.

 

이성계가 거기를 내던지고 서울로 천도를 하고 나서 그 터에다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이 정토사(淨土寺)다. 그런데 높은 벼슬아치들이 거기를 버리고 한양으로 갈 때, 강경에서 배를 타고서 갔다. 배가 김포 손돌목을 접어들어 가는데, 거기가 어떻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기역자라고 해도 좋고 니은자라고 해도 좋고, 그렇게 확 꼬부라져 버렸다.


서해안은 하루에도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간만의 차가 있어서 배가 썰물을 따라서 쏜살같이 앞으로 올라가는데, 배에 탄 높은 벼슬아치들이 보니까 아니, 배가 지나갈 틈이 없다. 그냥 가다가는 절벽에 탁 부딪혀서 배도 다 깨지고 몰사 죽음을 하게 생겼다. 그래서 “저놈 죽여라. 저놈이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한다”며 뱃사공을 죽이라고 했다. 그 뱃사공이 장가도 못 간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그 뱃사공은 바가지를 물에다 띄워 주면서 “이 바가지 가는 대로만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하고서 죽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배를 돌이킬 수도 없다. 너무 좁아서 배 하나 간신히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는 수 없이 뱃사공이 말한 대로 들물에 떠밀려서 올라가 보니, 기역자라고나 할까 니은자라고나 할까, 그렇게 각이 졌다. 그때 죽은 사공이 손자 손(孫) 자, 밀양 손가다. 장가도 못 간 손도령이 죽은 곳이라 해서 손돌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또 그 사공이 죽은 날이 음력 시월 스무날인데, 조선 5백 년 동안 이날만 되면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그것을 ‘손돌이추위’라고 한다. 우리들 어려서만 해도 그날만 되면 틀림없이 그렇게 추웠다. 그래서 손돌이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도 해야 되고, 이엉을 엮어서 지붕 해 이는 것도 그 안에 다 해야 했다. 손돌이는 손도령이라는 말이다.  장가도 못 들고서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그 원한 때문에 그렇게 날이 춥다는 것이다. 물이 빠지는 곳을 학술용어로 파(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파(破)는 그렇게 되어져 있다.

 

IMG_1416917267.jpg이 지구상에서는 물 빠지는 파(破)가 어디냐 하면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이다. 그게 땅 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높은 데는 필리핀과 같은 섬나라도 있고 깊은 데는 물속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구슬을 꿴 것 같다고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도 했고, 노끈 모양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다고 해서 충승도(沖繩島)라고도 했다. 금문도(金門島)니 조종도(祖宗島)가 있는 곳, 아주 협소(狹小, 좁을 협, 적을 소)한 데다.
 
왜 파는 그렇게 협소하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그 안에 있는 광활한 생기(生氣)가 빠져나가 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알아듣기 쉽게 남자의 양물, 자지 구멍은 오줌을 눌 때나 조금 벌어지고 늘 붙어 있다. 또 분문(糞門)이라고, 똥 분 자, 문이라는 문 자, 똥 나오는 구멍 문이 있다. 그걸 똥구멍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만날 닫혀 있다. 또 여자한테는 구슬 옥 자를 붙여서 옥문(玉門)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아기를 잉태해서 기르는 궁전, 자궁(子宮)이 있다.  아들 자 자, 궁궐이라는 집 궁 자, 아기를 잉태해서 기르는 곳이다. 이 자궁도 필요에 의해서만 벌어지고 항상 딱 붙어 있다. 거기는 샐 설(泄) 자 기운 기(氣) 자, 설기(泄氣)가 되면 안 된다. 생물이라면 100%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다시 좀 더 설명을 하면, 강원도 금강산의 중심이 비로봉이다. 거기서부터 비롯한 물이 한강으로 다 흘러내려 온다. 여기 충청북도 속리산 남쪽 물은 금강으로 내려오고 속리산 서북쪽 물은 남한강으로 내려간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물과 합류를 하기 때문에 양수리(兩水里)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서울 노량진과 용산 사이에 중지도가 있다. 그게 왜 거기에 있느냐 하면, 물이 빠지지 말라고 설기(泄氣)를 막으려고 섬을 갖다 놓은 것이다. 또 그것만 가지고도 안 되니까 그 밑으로 내려가서 여의도가 있다. 국회의사당 있는 곳. 근래에 와서 국회의사당을 짓고 했지 원래는 거기가 사장(沙場), 벌판이다. 그리고 고 옆에 또 밤섬이라고 있다.  그렇게 섬이 잘잘한 게 여러 개가 있다.
 
그것이 큰 홍수가 지면 상식적으로 볼 때 다 떠내려갈 것 같다. 하지만 절대 안 떠내려간다. 참 조화속이다. 홍수가 져서 물에 묻혀도, 여러 만 년 고 모양 고대로 절대로 안 떠내려간다. 예전에만 해도 밤섬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살았었다. 그게 물 빠지지 말라고, 다시 말해서 설기되지 말라고 막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산맥이 구부러지고 틀어진 것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지리를 모르면, 산천(山川)이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틀어지고 길쭉하고 모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리(地理)를 알고 보면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글자를 쓰듯, 지리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

 

하늘 천(天)자를 쓸 때,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글자를 쓰듯, 지리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 산(山)의 줄기 하나 내려간 것도 조금도 어긋남 없이 글자 쓰듯이 나타난다. 들판이 생기려고 해도 들판이 형성되어 나온 주산(主山) 마디가 있다. 한 마디가 10 미터 되는 것도 있고, 100 미터 되는 기다란 것도 있다. 마디가 있으면 반드시 들판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용절(龍絶)이라고 하는데 용절을 재어 보면, 어디쯤에서 들판이 생긴다는 그런 법칙이 나온다.


본래 지리학은 한漢나라 때 청오(靑烏)라고 하는 분이 처음 제창했다. 그 후 여러 사람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전해졌으나 다만 국지적(局地的)으로만 얘기한 것이다. 과거에는 ‘산지조종(山之祖宗)은 곤륜산(崑崙山)이요,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황하수(黃河水)라’고 했었다. 지구의 축(軸)이 곤륜산(崑崙山)이라는 말이다. 알기 쉽게 이 지구의 뿌리가 곤륜산이라는 말이다. 수레바퀴가 둥글어 갈 때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구에서 수레바퀴의 축에 해당하는 곳이 히말라야에 있는 곤륜산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의 산줄기가 전부 곤륜산에서 비롯되어 다 뻗어 내려갔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봐도 동,서양의 산이 곤륜산을 모태로 해서 갈려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곤륜산에서 뻗은 여러 산줄기 중 하나가 우리나라로 뻗어 들어와 백두산을 일으켰는데, 그 중간에 큰 들판이 있다. 그것을 만주 요동 칠백 리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 보면, 워낙 들판이 넓어 하루종일 가도 갈대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지리는 워낙 호호탕탕하고 틀이 커서 오히려 천문(天文)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라서 옛날 사람들이‘난지자(難知者)는 지리(地理)라’알기 어려운 것이 지리라고 했다. 지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다.

 


IMG_1416917347.jpg서울의 지리형세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되는데 지리만은 역(逆)해야 된다.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逆)하여 흐르다 중랑천에서 합쳐져 한강 본류로 빠져 나간다. 북악산의 오른쪽에 친 인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사직터널에서 부터 산줄기가 내려와 서대문, 서소문이 생기고 남대문까지 와서 그 줄기가 남산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쪽 물은 청계천으로 빠지고 반대쪽 인왕산줄기 서쪽 물은 용산쪽으로 빠져나간다.

 

인왕산 줄기 안쪽 물과, 북악산과 남산 골탱이의 서울 장안의 안쪽 물은 전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거꾸로 치올라가 중랑천으로 빠져나간다. 청계천 물이 흐르는 방향은 한강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과 정반대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김포와 강화도 쪽으로 흐르지만, 청계천 물은 묘하게도 서에서 동으로 역(逆)하며 거꾸로 흐른다. 서울에 도읍터 하나 만들기 위해 청계천 물이 그렇게 역(逆)을 했다는 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물이 양수리에서 합해져 서쪽으로 빠지는데,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남산 안쪽 물만 거꾸로 치올라간다. 지리는 이렇게 역(逆)을 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집터도, 묘자리도 다 그렇다. 그렇게 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역(逆)을 하지 않으면 절대 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4대문 안쪽 물은 모두 청계천에 모여들어 불과 몇km를 역(逆)하면서 흐르다 중랑천으로 빠져 나간다. 청계천이 역수(逆水)하는 거리가 얼마 안되지만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오늘날까지 600년이 넘게 도읍터의 생기를 발하고 있다. 청계천이 역(逆)하면서 흐르는 거리는 몇 키로 될 뿐이다. 서대문 남산 경복궁, 그게 얼마 안 된다. 그렇게 좁아터진 데다. 그래도 그 기운 가지고 조선왕조 500년을 끌고왔다. 그리고 노량진에서 제일한강교를 넘다보면 가운데 중지도라고 있다. 이런게 왜 생겼느냐 하면 한강물이 빠지는데, 중간에 중지도가 있어서 서울의 땅 기운이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밤섬이 있다. 홍수가 밀려오면 잘잘한 밤섬같은 것은 그냥 쓸려가 버리고 말 것 같은데, 여러 천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또 그런가하면 그 밑에 여의도가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난지도가 있고, 강화도에 가면‘손돌목’이라는 곳이 있어서 강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있다. 그것이 다 설기(洩氣)되는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IMG_1416917411.jpg대전(大田)의 형국
서울과 비교할 때 대전의 형국은 진안, 무주에서부터 추풍령, 속리산 물이 전부 거꾸로 치오른다. 우리 나라 대세가 전부 위에서 아래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가는데, 이쪽 물은 거꾸로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오른다. 추풍령, 무주, 진안, 장수가 다 남쪽이다. 금강이 공주에 고마나루까지 물이 거꾸로 올라가서, 거기서 부터는 부여쪽으로 구부러져서 장항 군산쪽으로 순(順)하게 내려간다. 지구에서 자리가 이렇게 된 곳이 없다.

 

서울의 터는 대전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것이다. 대전이 서울터의 몇 백배에 해당한다. 속리산쪽에서 부터 장수, 진안, 무주로 해서 공주까기, 우리 나라 중심부 절반을 역(逆)을 한 곳이다. 지리학상으로 볼 때 지구의 혈이 바로 남북한을 통털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중에서도 오직 대전이 자리한 중부지방 이곳만이 지구의 혈이다. 본래 천지가 형성 될때 혈자리가 정해진 곳이다.

 

곤륜산에서 부터 지맥이 뻗어 나와 우리나라 요동 칠 백 리 만주 땅에 결인(結咽)을 하고(결인이란 지리학상의 술어로 맺을 결(結)자, 목구멍 인(咽)자다), 백두산을 일으켜 들어왔는데, 백두산에서부터 금강산으로 해서 뻗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사람으로 말하면 24척추와 같다.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백두산에서 비롯되는 산줄기 체계와 바다로 빠져나가는 강줄기 체계를 보게되면. 특이하게도 오직 금강錦江 줄기만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거의 절반을 역(逆)하면서 흐른다. 이렇게 크게 역(逆)을 하여 생기를 모으는 지세는 전세계를 통틀어 오직 태전(大田)을 에워싸고 있는 금강 수계뿐이다. 사람에게도 앞뒤가 있듯, 산에도 앞뒤가 있다. 곤륜산 중에서 우리나라 쪽은 산 앞이고 곤륜산의 뒤, 구라파 쪽은 산 뒤다. 산 뒤는 덤으로 있는 것이어서 뒤쪽은 따질 것도 없다.

 

 

IMG_1416917506.gif지리(地理)를 보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가 감싸 주었다. 이것이 학술 용어로 내청룡(內靑龍)이다. 그리고 아메리카 가닥이 우리나라를 감싸 주었다. 그것을 외청룡(外靑龍)이라고 한다. 세계 지도를 놓고서 보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한 눈으로 봐도 환하게 알 수 있게 되어져 있다.  또 서해바다를 건너 중국 그 큰 대륙이 싱가포르까지 많을 다(多) 자, 다자 백호(多字白虎)다. 그것이 중중첩첩(重重疊疊) 중국 대륙에서부터 싱가포르까지 우리나라를 감싸 주었다. 그것을 내백호(內白虎)라고 한다. 그리고 흑인들이 사는 아프리카가 외백호(外白虎)다. 한 8억 인구가 사는 곳이니 얼마나 큰가. 백호는 그렇게 되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주가 안산(案山)이다.

 

만유의 생명체란 알기 쉽게 말하면 다 군신좌사(君臣佐使)로 조직되어 있다.  꽃으로 말하면 꽃 이파리가 열 개고, 스무 개고 있지만 그게 다 꽃 속, 꽃 중심에 있는 화심(花心)을 위해서 붙어 있는 것이다. ‘탐화봉접’(貪花蜂蝶)이라고, 꽃을 탐하는 벌과 나비를 보면 꽃 속 가운데 있는 화심(花心)에만 가서 앉아서, 기다란 침을 꽂고서 꿀을 빨아먹는다. 그 중심, 핵核, 그게 화심이다. 지구가 한 송이 꽃이라면 우리나라는 꽃 속 화심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처럼 24절후가 똑바른 데가 없다. 춘하추동 사시가 똑바르고, 기후도 삼한사온으로 고르고, 물맛도 지구상에서 가장 좋다. 우리나라가 바로 꽃의 화심, 지구의 핵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생긴데가 없다. 풀도 우리나라 땅에서 자란 것이 약효가 가장 좋다. 우선 인삼 하나를 예로 들어봐도, 우리나라 인삼 한 뿌리면 중국 인삼 다섯 뿌리의 약성에 해당한다. 중국 인삼 다섯근을 먹어도 우리나라 인삼 한 근 턱도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도 또한 그렇다. 민족성이 비뚤어졌든 어떻든 두뇌가 가장 영특하다. 우리나라가 바로 지구의 혈자리, 지구의 핵이다.

 

 

 

IMG_1416917584.jpg존 M. 홉슨 저 / 정경옥 역 / 에코리브르 / 2005년 1월/ 18,000원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라 동도동기(東道東器)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특징을 축약해 흔히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을 쓴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면 이 말은 동도동기(東道東器)로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 정신문명은 물론이고 기계문명마저도 그 발원지는 동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동양이 서양과의 문명발달 경쟁에서 근소한 시간적 우위를 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 과정을 통틀어 ‘숙련된’ 동양에서 ‘미숙한’ 서양으로 ‘모든’ 인문적 지식이 ‘전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 전수목록에는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완제품 수준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참조하고 인용하는 사료와 자료들은 충분히 치밀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구태여 저자가 존 M.홉슨이라는 전형적인 서양인 혈통이란 걸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그러한 문명발달의 원조 논쟁에 있지 않고, 인류문명에 있어서 동양의 명백하고 압도적이었던 문명사적 역할이 얼마나 축소되고 은폐되어 왔는지를 밝히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이 자기기만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부터임도 알게 된다.


동양은 ‘창조’ 서양은 ‘모방’
“서양 사람들은 독일의 발명가 구텐베르크가 문명에 혁신을 가져온 인쇄기를 최초로 세상에 소개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자 뒤에 숨은 진실은 이동형 인쇄기에 사용하는 최초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것보다 적어도 50년은 먼저 한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구텐베르크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적절한 정황적 증거도 있다. 요컨대, 한국의 존재는 오늘날 질 좋은 자동차를 서양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1000년 동안 서양의 발흥에 기여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중)
 
우리는 최초의 인쇄기술 보유국이 우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저자는 그 사실(史實)의 이면에 고정관념으로 가려져 있는 중대한 진실들을 들추어낸다. 흔히 인류의 3대 발명을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라고 한다. 이 발명품들은 모조리 동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서양으로 전수되었다. 앞서 저자의 서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해낸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입수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의 먼지를 털어 내어야 한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은 훨씬 오래 전부터, 아니 역사의 전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교류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교류는 일방통행이었다는 점이다. 즉 서양은 늘 문명의 수혜자였다. 동양은 ‘창조’하고 서양은 ‘모방’했다. 사실상 근대까지도 유럽인들의 기술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동양에 비해 아주 조악했다.
 
한 유럽 지식인은 그의 저서 『위대한 우(禹)임금과 공자(Yu le Grand et Confucius)』에서 ‘유럽인이 괄목할 만한 경제적 발전을 누리고 싶다면 중국을 모방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할 정도였다(이 책 255쪽). 또한 16세기 예수회 선교사의 보고서를 접했던 서양인들은 일반적으로 중국을 세련된 문명국으로 인식했으며, 중국과 이집트는 모두 상당한 물질적 성과, 심오한 철학, 월등한 저술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257쪽).
 
그랬던 유럽이 17세기에 이르러 마치 ‘유전자 대혁명’을 겪는 것처럼 일대 변신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뉴턴 등을 비롯한 대과학자들의 세기가 열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동양은 더 이상의 ‘창조적 지식’의 출현이 없는 까닭 모를 정체기로 빠져들게 된다(저자는 19세기 후반까지도 동양이 여전히 문명의 강자였음을 말하고 있긴 하다).
 
케플러(1571∼1630) 1619년 《우주의 조화》 출간
뉴턴(1642∼1727) 1687년 《프린키피아》 출간
데카르트(1596∼1650) 1637년 《방법서설》 출간
파스칼(1623∼1662) 16세에 《파스칼의 정리》 발표
보일(1627∼1691) 1662년 ‘보일의 법칙’ 발표
라이프니츠(1646∼1716) 1663년논문 《개체의 원리》 발표
페르마(1601∼1665) 17세기 최고의 수학자
 

 

서양인들의 모방과 착취
문제는 서양인들이 주도권을 쥐자마자 그것을 남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약적인 발흥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지적인 부채에만 기인했던 것이 아니다. 서양은 식민지화를 통해서 무상의 노동력과 자원, 무엇보다도 독점에 가까운 시장확보라는 이중 삼중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 또한 동양으로부터 이러한 경제적인 이득뿐 아니라 기술적인 모방까지 동원되었다고 말한다. 현대문명을 말함에 있어서 수학(數學)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오늘날의 십진법 수 체계 그 외에도 항해술, 조선술, 천문학, 도로망 등 세계를 이미 하나로 만들었던 교통수단은 그 어느 것도 동양인들의 지적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이라고 착각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작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동양을 비롯한 소위 제3세계인들은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IMG_1416917650.jpg팔괘에서 시작된 이진법의 원리
서양에서 이진법은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주역 이론에 이진법이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체계를 정립시켰다. 그는 베이징에 있는 프랑스 전도사 부베와 편지를 교환하면서 주역을 배우고 괘상(卦象)을 스스로 연구하였다. 그는 한문으로 쓰여진 주역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동양을 다녀온 신부들의 보고서를 입수하여 주역을 공부하였다.

 

마침내 1697년 ‘파리 과학 학술원’에서 자신이 구상한 개념을 정리하여 「이진법 정수론 주해」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것은 그 역사적인 논문의 부제가 ‘0과 1의 기호를 사용, 고대 동양 태호 복희의 괘상에 나타난 이진법 산술이 갖는 의미와 그 효용성에 관한 고찰’ 이라는 것이다. 그 무렵 1701년 부베가 라이프니츠에게 ‘복희 64괘 차서도’와 ‘복희 64괘 방위도’를 보내왔기에 팔괘의 배열이 인류역사상 수학의 ‘이진법’ 원리를 제일 먼저 나타낸 것이라는 발견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1709년에 복희팔괘와 함께 이진수를 나타낸 분석표를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면서,“주역은 모든 과학의 열쇠이다.”라는 부베 신부의 신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복희팔괘는 세 개의 효(爻)를 이용하여‘건태리진손감간곤’라는 여덟 개의 괘상를 표시하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양(1)을 1, 음(0)을 0으로 생각하고 고쳐 쓰게 되는데, 팔괘를 이진수로 나타내면 111, 110, 101, 100, 011, 010, 001, 000과 같다. 이후 부호논리학의 대가가 되면서“나의 불가사의한 이진법의 새로운 발견은 5천여 년 전 고대 동양의 복희왕이 발견한 철학서이며 문학서인 주역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IMG_1416917731.jpg컴퓨터는 0과 1로 ‘계산하는 사람’
18세기 라이프니츠가 세상의 언어 표현을 몇 가지 간단한 기호 속에 모두 담으려는 꿈을 힐베르트, 괴델, 튜링으로 이어지는 수학자들이 실현하려고 애썼고, 그 과정에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38년에 이진법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튜링 기계’를 세상에 소개하면서 현대 디지털 컴퓨터의 추상적인 모델을 제시하게 된다. 또한 튜링은 1943년 12월, 콜로서스(Colossus)라는 세계 최초의 전기로 동작하는 연산 컴퓨터를 만들어 독일군의 무적 암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했다. 이는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미국의 에니악(ENIAC)보다 2년이나 빠른 것이다. 그후 튜링의 아이디어는 1951년 ‘폰 노이만’에 의해 현대 컴퓨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에드박(EDVAC)이 만들어졌고, 과학자들은 수많은 계산 방식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디지털 컴퓨터의 핵심에 접근하게 된다.
 


이처럼 음양은 이진법을 낳고 이진법을 응용한 사칙연산 계산기는 컴퓨터로 이어지고 있다. 세상 모든 만물에 수數를 대응시켜서 짝수와 홀수로 분류하여 0과 1로 표시한 것은 주역에서 만물을 음과 양으로 분류시킨 것과 동일하다. 0이 곧 무극이며 1이 곧 태극이다. 그리고 하나에서 많음으로 많음에서 하나로 귀착시키는 논리의 과정은 전체에서 부분에 이르기까지 질서가 있음을 보여준다. 태호 복희씨가 상수(象數)와 팔괘(八卦)를 비롯한 주역의 원리로 세상을 크게 밝혀 놓으셨고, 주역을 근간으로 현대문명의 굵직한 주제들인 컴퓨터, 생명공학, 통신과 방송을 아우르는 디지털 문명이 융성하게 되었다. 빅뱅 우주론의 거장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인 태극, 음양, 팔괘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류문명의 모태가 주역(周易)이다.


IMG_1416917823.jpg인류문명의 아버지, 태호 복희(太昊 伏羲, BCE 3528~ BCE 3413)

태호복희太昊伏犧 (BCE 3528 ~ BCE 3413)씨는「태백일사」의「신시본기」기록에 의하면 제5대 태우의 환웅천황(BCE 3519 ~ BCE 3419)의 12번 째 막내 아들이다. ‘태호太昊’는 복희의 호이며 ‘크게 밝다(대광명)’는 뜻이다. 송화강에서 하도(河圖)를 계시받아 지금의 대한민국의 태극기의 팔괘를 최초로 그으신 분이다. 태극·음양·오행·팔괘의 창시자이다. 뒤에 역학을 계승 발절시켜 나간 성인들이 문왕, 주공, 공자, 소강절, 김일부 인데, 모두 동이족 혈통 출신이다. 주역(周易)이라 불리게 된 것은 복희 8괘가 후일 신농씨를 거쳐 주周나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복희씨께서 태어나신 곳은 어디인가?
『환단고기』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배달 신시에서 태어나 송화강(추정)에서 팔괘를 그으시고 산동성 어대현(현재 미산현)에 묻히셨다고 하였다.「제왕세기」에 따르면, 복희씨는 ‘구이에서 태어나 성기(成紀)에서 자라고 어대현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신락시에 제곡고신께서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세운 최초의 복희묘(墓)’가 있다. 그곳에서 매년 5월 2일부터 5일까지‘복희제의’가 열린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인 태호 복희씨에 대한 이름조차 잃어버린 사이, 이곳에서는 복희씨에 대한 제사는 이미 그들의 생활 일부였고, 인류의 시원문화가 복희씨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자부심이었으며, 그 힘으로 자기네들이 세계를 통일 지배할 수 있다는 역사적 우월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수많은 학자들은 ‘태호 복희씨는 동이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동이족은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한족에게 흡수된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에 불과하다.

 

IMG_1416917900.jpg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중국쪽 1차 사료 공개
북한과 중국이 국경 획정 협상을 하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중국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모택동)둥 공산당 주석과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가 ‘요동 지방은 원래 조선 땅이었으나 고대 왕조가 조선민족을 압록강변까지 내몰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2월 27일 확인됐다. 이는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 주장해온 중국의 국가 차원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연구서 <북한-중국 국경 획정에 관한 연구>(세종연구소 펴냄)에서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가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만나 이런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고 밝혔다. 모택동 주석은 북-중 국경조약 체결 직후인 1964년 10월 베이징을 찾은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을 만나 "당신들의 경계는 요하 동쪽(요동)인데, 봉건주의가 조선 사람들을 압록강변으로 내몬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택동 주석의 이런 발언은 1964년 10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11책에 실려 있다.
 
모택동 주석은 이에 앞서 1958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과 만나서도 "당신들 선조는 당신들의 영토가 요하를 경계로 한다고 말했으며, 당신들은 현재 당신들의 압록강변까지 밀려서 쫓겨왔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이것을 써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1958년 11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4책에 실려 있다.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의 발언은 좀더 직설적이다. 저우 총리는 1963년 6월28일 베이징을 찾은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나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으며 심지어 예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저우 총리의 이 발언은 1963년 6월28일 중국 외교부가 펴낸 <외사공작통보>에 실려 있다.
 
모택동 주석이 요동 지방이 애초 고구려·발해 등 조선 선조들의 영토였으나 당 등 중국 봉건왕조의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종석 연구위원은 연구서 및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마오와 저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자이자 1976년까지 통치한 최고지도자들"이라며 "이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조선민족이 세운 고대국가로 인식했으며, 그 역사를 조선의 역사로 규정했다"고 짚었다. 이어 "두 (최고)지도자가 동일 주제를 언급하며 거의 같은 용어와 문구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당시 중국 정부의 정리된 공식 방침이었으리라 추정된다"며 "두 중국 지도자의 발언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할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하문명 3 http://www.youtube.com/watch?v=Sr0ML3aaRCQ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동북공정‘을 국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로 격상시켜 ‘고구려를 중국 동북지역의 오래된 소수민족 중 하나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고구려·발해를 중국 고대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애써왔다. 2000년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중국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연구계획을 비준·승인했으며, 2002년 2월 중국 사회과학원과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세 성이 공동으로 1500만위안(22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상 연구 공정‘(동북공정)을 출범시켰다.
 
한편, 1964년 10월 모택동 주석을 만난 북한의 박금철 당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마오 주석의 요동 영토 관련 발언을 듣고는 "양국 간 국경은 1962년에 이미 해결됐습니다. 주은래 총리가 아주 분명하게 백두산과 천지 문제를 모두 합리적으로 해결했습니다"라며 "현재의 국경선에 우리는 만족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두고 북한의 우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중은 1962년 10월12일 압록강·두만강을 공동 이용하며 백두산 천지 영유권을 분할(북 54.5% 중 45.5%)하는 등 이전보다 북쪽에 유리하게 정리된 북-중 국경조약을 체결했으며, 그해 12월11일 이 조약 비준서를 교환했다. 출처: 한겨레 - 2014년 2월 28일
 


※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는《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 사마천의 사기 25권은 단군조선이 중원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벌인 것이다.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자체도 옛날 삼한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간 것에 불과하다.-일본학자 고교 기요히코-

 

※ 세계적인 석학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독일,1889~1976)는 프랑스를 방문한 서울대 철학과 박종흥 교수에게 내가 당신을 초대한 이유는 당신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명해진 철학사상은 바로 동양의 무(無) 사상인데, 동양학을 공부하던 중, 아시아의 위대한 문명의 발상지는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상 가장 완전무결한 평화적인 정치를 2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아시아 대륙을 통치한 단군시대가 있었음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동양사상의 종주국인 한국인을 존경합니다(Martin Heidegger)

 


IMG_1416917955.bmp서양사는 아시아 문명이 모태
20세기 초중반 미 컬럼비아 대학의 유명 철학자였던 윌 듀런트(1885∼1981)는 1930∼50년대 지식인들에게는 중요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지식인들은 그를 통해 철학과 역사의 교류에 눈을 떴다고 평자들은 풀이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 문명의 응석받이이자 손자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조상인 동양의 풍요로운 유산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꼬집는다. 종래 서양사 중심의 서술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듀런트는 “서양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시작된다. 아시아가 가장 유서 깊은 문명의 장으로 유명해서가 아니다. 동양의 문명들이 서양의 시작인 그리스 로마문화의 배경과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리스와 로마가 현대 지성의 모든 원천은 아니다”면서 “서양 문명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들, 예컨대 서양의 정치 기구 및 경제 과학 문학 철학 종교의 뿌리가 이집트와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출처: 세계일보 - 2011년7월15일 

 


IMG_1416917997.bmp서양 중심의 세계사는 가짜다. 
리 오리엔트 = 다시 동방으로 !!!
저자 프랑크는  유럽중심주의의 잘못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2000년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된 바 있는 이 책은 서구의 발전과 세계체제의 기원에 관하여 근본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프랑크의 역작이다......

 

" 오리엔트" "빛은 동양에서".
세계 문명의 근원은 동양이었고 동양 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 역사의 시작 이었다.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강조하며 유럽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역사관과 세계사를 수정 하기를 요구한다. 우선 프랑크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00년 이전까지는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 하고 있었다. 1800년 이전 변변한 자원도, 풍부한 자본도 없었던 유럽은... 자원과 자본뿐만 아니라 기술 역시 1800년 이전 유럽은 아시아의 기술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계기는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 때문이었다.... 출처: 경향신문 - 2003년 03월 07일

 

전 미국 부통령 엘고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말했지만 서양의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뒤 얻어 온 기술"이라며 "이런 면에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혁명은 역사적으로 보면 두번째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발전 기여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5월 19일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

 

 

 

유, 불, 선, 기독교의 뿌리종교 신교(神敎)

 

1) 유교의 뿌리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하였다. ‘나는 기술을 한 것이지 창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공자는 누구의 사상을 기술했느냐, 중용 30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 ‘, 즉 중니(공자)는 요순의 가르침을 기술했으며 문무의 도를 법으로 삼아서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요순의 도를 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고손자로서, 황제헌원이 현효를 낳고 현효가 제곡고신을 낳았다. 이 제곡고신의 아들이 바로 요임금이다. 황제헌원은 사기 13권을 보면, ‘黃帝生於白民 自屬東夷‘라 해서 동방의 백민에서 출생을 했다고 되어있다. 환단고기에 보면, 황제헌원은 배달국 8대 안부련 환웅 때 이복형인 신농씨와 함께 동이족에서 분파해 오늘날 중화족의 정신적 시조가 된다.

 

순임금에 대해서는 맹자가 말하기를 ‘舜生於諸風 遊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즉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에서 살다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나오는 지명인 제풍, 부하, 명조는 모두 동이족의 땅이었다. 서경에 ‘東巡望秩 肆覲東后‘라 해서,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사지내고 ‘동방의 임금을 뵈었다‘는 구절이 있다. 사근동후(肆覲東后)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후(東后)는 단군왕검을 말한다. 즉 고조선의 제후 순은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을 보면, "나(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지역의 산동성 일대에서 살던, 흰옷을 입고 백색을 숭상한 은족(殷族)이 전형적인 동방조선족 계열의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중국학자 서량지나 임혜상도 말하고 있다.

 

2) 불교의 뿌리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으로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만든 불교를 최초의 불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 초대 구류손 부처, 2대 구나함모니 부처, 3대 가섭 부처가 있었다. 석가 부처는 네번째 부처이다. 그런데 이 전불(前佛)시대의 유적이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다.
 
◆ <삼국유사: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그의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말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처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 여기서 일곱 처는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黃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천왕사(天王寺), 담엄사(曇嚴寺)를 가리킨다.

 

◆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과 제가전기(諸家傳記)에 모두 이르기를 "신라의 월성동용궁(月城東龍宮) 남쪽에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으니 그 곳은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본사(本師) 석가불은 제4존불(尊佛)이며 가섭불은 제3존야(第三尊也)라고 되어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석가불 이전 가섭불(迦葉佛)시대에 이곳이 불국사(佛國寺)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7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大伽藍) 터이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 있다. 하나 더 든다면 화엄경에 바다 건너의 동방나라가 불교의 종주국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화엄경>에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들이 그 산 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고, 불교의 대웅전(大雄殿)은 본디 환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시던 대시전(大始殿)이었다.‘대웅(大雄)‘이란 뜻은 큰 스승이란 뜻이다. ‘환웅(桓雄)은 광명의 스승‘이란 뜻이다. 太白逸史(태백일사)의 三神五帝本紀(삼신오제본기)중에서 五帝說(오제설)에 ‘환웅을 일러 대웅(大雄)‘이라 하였으니 불가佛家의 대웅전(大雄殿)이란 본래 환웅전의 별칭으로 환웅을 모셨던 곳이다. 그러므로 대웅전은 본래 우리나라 밖에는 없는 것으로 아주 극소수 존재하는 외국의 대웅전은 근대에 이르러 우리 한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역사가 왜곡되고 신교(神敎)가 쇠퇴하면서 대웅전의 환웅 신상은 점점 부처상으로 바뀌었으니, 현대까지 산신각에 주신으로 모셔져 있던 호랑이 등에 올라 탄 단군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신상마저 부처상에 그 주신(主神) 자리를 내주고 구석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환웅전이 대웅전이 된 정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유서깊은 사찰에는 아직도 대웅전을 제외하고도 칠성각, 산신각, 삼성각, 명부전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우리 신교(神敎)의 흔적이라 하겠다.


3) 도교(道敎)의 뿌리

일반적으로 중국의 도교는 황노교(黃老敎)라고 한다. 황제는 그 혈통이 우리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갔다. 갈홍(葛弘) {포박자(抱朴子)}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
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렸다. 부연하자면 일찍이 황제는 14대 자오지 천황(치우천황;서기전 2707-2599) 때, 배달국의 수도인 청구(靑邱: 오늘날의 요령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삼청궁(三淸宮)에 들러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선사(紫府仙師)를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음부경}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을 전수받았다. 이것은 황제 학문의 맥 자체가 우리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계미(B.C. 518년)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의 성(姓)은 한(韓)이요,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先祖)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 이것은 노자 역시 황제와 더불어 동이족이며, 노자의 성은 원래 한씨로서 李耳의 李는 木의 子, 즉 東方의 子란 뜻이다. 이렇게 도교의 원뿌리도 우리나라 신교(神敎)에서 나왔다.

 


IMG_1416918054.jpg4) 기독교의 뿌리
슈메르 연구학자인 S.N 크래머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는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에서 지적했듯이, 서양에 있어서 최고(最古)의 문명은 슈메르 문명이다. 이 슈메르 문명은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삼성기전 하편(三聖記全 下篇)을 보면 환국에는 12환국이 있었는데, 그 중 바이칼호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수밀이국(須密爾國, Sumer)과 우루국(虞婁國, Ur)이었다. 수밀이국과 우루국 사람들이 알타이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가서 문명을 일으켰다. 당시 슈메르 민족이 사용하던 설형문자는 태호복희씨가 사용했던 8괘와 흡사하며, 언어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였다고 한다.

 

서양 유대교 문화의 뿌리되는 아브라함의 고향은 바로 슈메르 문명이 자리잡고 있던 갈대아 우르(Ur)이다. 그가 아버지 데라를 따라 서기전 1950년경 우르를 떠나 유프라테스 강의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이주하는 과정에서, ‘강을 넘어온 사람‘의 뜻으로 헤브루인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또 유대족이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인과 근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서양의 모체 문명의 뿌리는 바로 우리 환국문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슈메르의 종교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이라는 제천단 유적들은, 신교(神敎)의 삼신신앙과 제천문화가 환국의 후예인 슈메르인들의 삶과 신앙의식 속에서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로 슈메르의 지구랏이다. 이처럼 서양의 종교도 그 원뿌리를 신교(神敎)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모세의 5경인 구약의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 쓰여진 제사음식.性행위.종족번식.사회규율 등의 율법은 그 제정 유래 및 각 法條의 형식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함무라비法과 같다고 한다. 함무라비法의 기원은 바로 인류최초의 법전인 수메르법전이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거의 같다.

 

오행 
木: 유(儒)
金: 불(佛)
선(仙)
水: 동선(東仙)
火: 서선(西仙)
도의 전공분야
유지범절(凡節)
불지형체(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우주 주재자
상제님
미륵 천주님
옥황 상제님
백보좌 하느님
목적(目的)
대동(對同)
극락(極樂)
태청(泰淸)
천국(天國)
교리강령
충서(忠恕)
존심양성
(尊心養性)
집중관일
(執中貫一)
자비(慈悲)
명심견성
(明心見性)
만법귀일
(萬法歸一)
감음(感應)
수심연성
(修心練性)
포원수일
(抱元守一)
박애(博愛)
성령감화
(聖靈感化)
삼계유일
(三界唯一)
삼극
오황극
(五皇極)
일태극(공)
(一太極(空)
십무극(十無極)
(三位一體)
무극/태극/황극
법신/보신/화신
옥청/상청/태청
성부/성자/성신

 

 

IMG_1416918112.jpg※ 수메르 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 같이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썼다. 또 종교 신앙 가운데 지구랏이라는 제천단과 한문화의 흔적들이 그들이 남긴 유적 유물들에 뚜렷이 남아있다.(전,한신대교수 김상일,[인류 문명의 기원과 한])

 

수메르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주는 무수한 점토판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 주인인 인디언이 동북아에서 베링 헤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사실은 언어,혈액형, 체질, 치아 모양등의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이미 밝혀진 것으로서 미국인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H. 그린버그 교수와,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 G. 터너 교수팀이 신세계의 선사역사에 대한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인디언들의 치아(齒牙)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추측을 이루는 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신세계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북미의 오리건 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한데 방사선 탄소 측정에 의하면 이것은 약 9천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송호수 교수는 1982년 10월 7일에 현지 조사를 하여 미국 워싱턴 인디언 박물관에는 이외에도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베틀, 어망, 물레등 우리 선조들이 쓰던 생활도구와 동일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고 지적하였다.[(한민족의 뿌리 사상).26쪽) 더욱 놀라운 것은 미 대륙의 인디언이 사용한 빗살무늬 토기는 그 모양과 무늬가 한국의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환국의 신석기 토기와 구분 할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1만여년 전 당시에는 베링 헤협이 가교 역할을 하여 이곳을 타고 동방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은 동서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밝(불함)‘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가장 오래된 개념이라고 지적하면서 한 나라, 한 민족속에 ‘밝(광명)‘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 뿐이라고 했다.[불함문화론]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을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교일치: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최고의 사제가 되었으며, 신권 정치가 실시되었다.
-제천의식: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가진 신전이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천문학: 인간의 운명이 천체 운행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태음력: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들었다.
-60진법: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요하문명 3 http://www.youtube.com/watch?v=Sr0ML3aaRCQ

 


 

한국의 사대주의 지식인들과 민족주의

                                         이화여대 강철구교수님 글

 
한국 지식인들이 서양학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요사이 일만이 아니다.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높다. 민족주의는 세계화 시대에는 이미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배타적이며 폐쇄적이라고도 하고 나치의 파시즘과 같이 독재적이며 약자를 억압하는 이념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이제 민족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민족과 민족주의를 제대로 알기나 하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유감스럽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서양학자들의 글을 몇 자 적당히 읽고 떠들어대는 소리다.

 

우리 입장에서 정말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모두 1980년대에 서양에서 등장한 새로운 민족주의 이론에서 비롯한다. '근대주의 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어네스트 겔너나 에릭 홉스봄 같은 영국 학자들이 대표다. 서양의 민족주의 연구자들 다수가 이 방향을 따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민족은 길어야 200년의 역사 밖에 갖고 있지 않다. 18세기 말부터 자본주의 발전이나 산업화라는 근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민족이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주장이다. 이 사람들은 민족주의가 역사 속에서 유혈과 전쟁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주장이 옳은 주장일까?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엉터리 주장이고 서양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이론이다. 우선 민족의 역사는 이들의 주장보다 훨씬 길다. 유대민족 같이 수천 년 되는 경우도 있고 수백 년 되는 경우도 많다.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과의 경쟁 속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민족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영국과 프랑스에서 17-18세기에 분명히 나타난다.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이 민족주의를 발전시켰다. 유럽에서 19세기가 민족주의의 시대가 된 것은 산업화가 나라들 사이의 경쟁을 더 격화시켰기 때문이다. 산업화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 힘의 차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민족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것도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렇게 민족주의는 내부적 요인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민족정체성은 매우 강인한 힘을 갖고 있다. 민족의 종족성이나 언어, 문화, 종교, 관습, 공동의 역사적 경험이 그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해도 몇 세대씩 민족정체성이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다종족으로 구성된 많은 유럽국가에서 19세기에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그것이 많은 정치적 분규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산업화로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국가 안의 주된 종족이 다른 소수 종족들을 더 강하게 지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언어나 문화, 역사 해석마저 강요하니 반발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원인을 살피지 않고 민족주의가 분란만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민족이 얼마 안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스스로를 지구인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인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민족이 쉽게 사라질 수 있겠는가?

 

또 지금의 세계화 시대는 그야말로 모든 세계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대가 아니다. 약소국가에 대한 선진국의 억압과 착취가 더 강화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니 이런 차별과 억압의 시대에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면 되었지 약화될 수가 없다. 현재 영국과 미국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 '근대주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이들 나라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강력한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특별히 민족주의를 주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진국의 민족주의는 자기들의 세계 지배 야욕에 방해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민족주의를 억압적이고 비도덕적인 이데올로기로 모는 것은 겔너나 홉스봄 같은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이들은 동유럽 출신자들로 나치독일 민족주의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강대국들의 파괴적 민족주의와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주를 지키려는 제3세계 국가들의 민족주의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론을 우리가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황당무궤한 일인가. 그것은 진리도 아니고 보편타당한 원리도 아니다. 그것은 후진국들과 약소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학문적인 무기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런 잘못된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학문이 자주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대주의적인 태도로서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경제력으로는 이제 세계 10위권에 근접했지만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수준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세계 4대강국에 둘러싸여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따라서 민족을 통합하고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아직도 매우 중요한 이념이다. 섣부른 해체는 금물이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주의가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일 필요는 없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이나 개방경제와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의 쓸 데 없는 간섭을  막고 우리의 이익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한국사회에서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민족주의 탓으로 돌린다. 물론 한국인들이 다른 아시아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멸시하고 억압하는 것은 잘못된 일로서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주의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또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든가 한국이 다민족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민족은 핏줄로만 연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여러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요소가 긴 역사 속에서 그것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고대에 여러 종족의 핏줄이 섞였다 해도 그것 때문에 한국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외국인 노동자나 외국인 신부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해서 다민족사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민족사회라는 것은 여러 민족이 함께 국가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각각의 민족이 고유의 민족적 성격을 계속 유지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다민족사회로 갈 수 있는 싹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우리보다 더 민족주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미국인들이 즐겨 말하는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미국식 이름일 뿐이다. 두 개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사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이상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그런 이상에 현혹되어 현실을 잊는다면 결코 외세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족주의는 낡은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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