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식인 부부의 귀농 일기

2010.07.31 14:37

햇빛눈물 조회 수:5020

정말 오랜만에 한겨레신문 토요일자 책과 생각 머리기사에 지리학자의 책이 나왔다. 작년부터 기대하고 하고 있던 책 중에 하나였는데, 드디어 나왔다. 생각보다 분량은 상당히 많다.(700페이지 가량이다) 내 개인적으로 성찰적인 내용의, 단기간에 나올 수 없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른 페이지에도 섰지만 최영준 교수의 이 책을 소로의 '월든'에 비유하던데 뭐 아직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책 광고를 위한 이런 단순 비교는 별로라 생각된다. 파급력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솔직히 이 책을 어찌 '월든'에 비유할수 있겠냐마는, 어찌보면 오히려 서양의 것에 무조건 비교하고 관련짓는 것보다는 최영준 교수의 '홍천강변...'은 그 나름의 독자적인 가치와 무게를 인정해주는 게 더 좋다고 생각된다. 최영준 교수의 책과 소로의 책 두권 그리고 갑자기 이와 관련되어 갑자기 생각나는 데이비드 마시의 인간과 자연도 같이 스크랩한다. 마시의 인간과 자연도 상당히 유명한 책인데 아직 잘 알려진 것 같지는 않다. 번역을 최영준 교수와 같은 고려대의 홍금수 교수가 번역했다. 3년 전에 사서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혹은 그때 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인지 60페이지 정도 읽다가 말았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야 겠다.

 

       

 

    

 

 

한겨레신문 2010.7.31  어느 지식인 부부의 ‘귀농 20년’ 일기장  

최영준 교수의 ‘시골 생활 분투기’ 700쪽 분량에 파란만장 일화 생생
‘어두운 손’ 행패 일삼는 농촌현실 진정한 촌사람 돼가는 모습 ‘감동’  


 

 

‘홍천강변에서 20년’. 지난해 8월에 나온 인문학 무크지 <담론과 성찰> 창간호에 실린 이런 좀 낯설어 보이는 제목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또 몹시 심란해했다. ‘어느 지리학자의 주경야독 농촌생활기’라는 부제가 붙은 그 글의 주인공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의 글은 간결하고 담백한 듯하면서도 오늘날 우리들의 삶,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문명 어디가 어떻게 병들어 곪아가고 있는지를 산골 오지의 생활이라는 아주 색다른 풍경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번에 최영준 교수의 글이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이라는, 700쪽에 가까운 두터운 책으로 묶여 나온 데는 무크지에 실린 그 글이 주었던 감동이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유학까지 다녀온 서울 유명 대학의 잘나가던 교수가 20년 전 49살 나이에 “현대식 개발과 도시화의 파고를 겪지 않을 곳, 아니면 가장 늦게 그러한 변화를 겪게 될 후보지”를 물색한 끝에 찾아낸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통곡리(산수리)의 포장도로도 없는 홍천강변 오지 논골마을 외딴집에 ‘주경야독’하러 들어간다.

무크지의 그 글은 그 ‘돈 안 되는’ 거사를 결행하게 된 경위와 월~금요일엔 서울에서 강의하고 금~일요일엔 논골마을에서 낮엔 농사일하고 밤엔 읽고 쓰는 20년 세월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성장주의와 도시 소비문명에 길들여진 자들이 그 오지까지 침투해 어떻게 그 청정무구의 자연세계를 파괴하고 농락하는지, 전문지식과 특유의 감성으로 무장한 점잖은 중·노년 학자의 시선으로 드러낸다. 글의 감동은 그렇게 찾아들어간 세계의 청정무구가 주는 기쁨과 그것이 돈과 재미에 골몰한 외부 침입자들의 행패로 유린당해가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빚어내는 바로 그 선명한 대조 때문에 배가되는데, 읽는 독자들이 분개할 만한 침입자들의 패악질을 지은이는 오히려 담담하게 때로는 동정과 이해까지 표시하며 그려나간다. 이 부분이 정치적 편견과 요란한 직설이 난무하는 흔해빠진 고발문들과는 다른 점이고 또 강점이다.

청정한 경승지라는 사실이 점차 알려지면서 승용차를 모는 도회인들이 몰려들어 그렇지 않아도 좁은 외길을 막거나 홍천강 물속까지 밀고들어가면서, “우리 민족이 아직도 수렵채취경제생활을 영위했던 중석기시대 원시인의 습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다.

과잉영양의 맛난 먹을거리들이 넘쳐나는데도 온갖 도구를 동원해 물고기, 다슬기의 씨를 말리고 야생동물을 밀렵하고 떼지어 찾아오는 청둥오리 가족들을 향해 엽총을 난사하고 오디오기계로 떠들어대고 쓰레기 투기로 자연이 몸살을 앓게 한다. 봉고차를 대기시켜 놓고 남의 집 연못 수련을 뿌리째 훑어가고 야산에 심어놓은 더덕과 미삼, 할미꽃 등 야생초, 토종밤, 두릅을 싹쓸이해간다. 도시인들의 기호에 맞춘 알량한 돈벌이를 위해 그들은 남의 집 자물쇠까지 부수고 들어가 패물과 현판, 가구, 돌확, 토기들을 빼내가고 농산물 판매대금까지 훔쳐간다.  



지은이가 사랑해 마지않는 땅들이 돈을 위한 막개발로 파괴당하고 결국 오지까지 포장대로가 들어서자 도회로 떠난 자들이 값 오른 땅 소유권을 주장하며 하나둘 나타나고 리조트 건설로 강물은 오염되며 농민들은 제초제와 비닐과 돈에 물들어간다. 그런 묘사들은 최 교수의 20년 파란만장한 체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은 보여준다.

무크지 글과는 달리 책은 일기체로 돼 있다. 지은이가 홍천강변으로 들어간 1990년 4월부터 2009년 12월26일까지 주로 논골마을에서 쓴 일기들을 추려 만든 책의 무게중심은 그 일부를 요약정리한 무크지 글과는 달리 지은이가 주로 노인들만 남은 현지인들에게 ‘주말에나 찾아오는 서울 젊은이’로 비치다가 점점 본격적인 농사꾼이 되고 정년퇴임 뒤엔 아예 거주지 이전까지 한 뒤 현지 농협 조합원 자격을 얻어 어느새 논골 원로로 변모해가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폐허로 변한 집을 인수해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거기에 딸린 논밭들을 지렁이와 미생물, 그리고 그들을 먹이로 삼는 곤충과 동물들이 함께 번창하는 무공해 유기농 옥토로 바꾸고 이웃들과도 소통하며 흔들림없이 자신의 세계를 착착 확장해가는 과정의 고투와 성취, 깨침과 보람이 그날그날의 일기에 별다른 꾸밈 없이 사실 위주로 담겨 있다. 그럼에도 깨끗이 맨 땅에 그다음 주에 가보면 또다시 무성해지는 잡초들과 사투를 벌이고 되풀이되는 홍수와 가뭄, 외부 침입자들에 시달리면서도 도예가로 역시 대학교수인 부인과 본업인 학문활동을 병행하면서 호흡을 맞춰 서로를 다독이며 결코 낙담하지 않고 한발한발 전진하는 모습은 사실의 산만한 나열이 아니라 줄거리를 지닌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이들 부부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남다른 이해는 20년의 세월 동안 점점 더 깊어지고 풍부해지는 발전적 궤적을 그린다. 그림솜씨도 그렇지만 만만찮은 문학적 자질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균형감각도 거기에 기여했다.

외부인의 행패, 그들이 대변하는 우리 일상적 삶의 어두운 그림자, 신자유주의 문명의 우울한 전망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이런 낙관과 성취, 균형감각과 절제가 저변에 일관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휴식처·재충전지로서의 전원생활을 그리는 도시인이 아니라 아직 전업농은 못 되지만 점점 거기에 근접해가는 농경인 쪽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 기력이 다할 때까지 땅과 함께하는 생활은 계속될 것이며 나는 하루하루 진정한 촌사람으로 변해 갈 것이다.” 이 책이 전망 없는 자본주의 도시문명에 염증을 느낀 지식인들의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대안 문명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진지한 탐구로 읽힐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탐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비록 최근에 정년퇴임했지만 부부 모두 대학교수라는, 한국 사회에서 평균 이상의 소득과 안정성을 지닌 ‘사회적 신분’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그들의 산골 오지 정착에 분명히 큰 장점으로 작용했겠지만 그게 그런 식의 대안적 삶 모색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가에는 약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돈과 신분’ 없이 그런 식의 시도를 해보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최영준 교수 부부의 시도가 그 자체로 더없이 성실하고 진지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장 확실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ps : 위에 있는 수채화가 최영준 교수가 그린 그림인가보다. 정말 멋있다. 그림까지...얼마전에 헌책방에서 책을 보다가 구입한 책이 '원제무의 도시문화 오딧세이'이다. 어찌보면 뭐 흔하디 흔한 도시 여행기(그래도 저자가 도시공학자이다)이지만 나에게 이 책이 확 땡긴점은 책 곳곳에 있는 수채화이다. 사진이 아닌 수채화. 저자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그린 수채화가 수록되어있는 것이다. 어찌나 멋있던지. 오히려 사진보다 더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고 해야할까. 한번 읽어볼만하다. 그림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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