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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6 00:00:01)






‘가리봉’ 그렇게 부끄러운 이름인가요?


2007년 09월 05일 (수) 21:49   한겨레신문










[한겨레]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가리봉입니다. 서울의 남서쪽 한 모퉁이에 있는 동네지요. 보통 구로구 가리봉동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옛날에는 경기도에 속했고 이름도 가리봉리 혹은 가리산리였죠.

1960년대 초까지도 이 동네는 약 100여 가구 정도가 모여사는 농촌 마을이었죠. 양천 허씨가 70가구 이상이 살던 집성촌이기도 했습니다. 주변에는 논과 밭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2000~3000평씩은 달고 있어서 근방에서도 비교적 풍요로운 동네였어요. 잔칫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돼지도 잡고 국수도 삶았지요. 그네들은 밤 늦도록 장구도 치고 춤도 췄죠. 그런 날에는 ‘깽깽이’라 불리던 거지들도 마을로 모여들어 밥 한그릇씩 얻어먹었지요. 한국전쟁의 불길도 이 마을에는 세지 않았어요. 전쟁 기간 동안 마을에서 죽은 사람이라곤 비행기 오폭으로 숨진 세명의 어린이 말고는 없었지요.

전쟁보다 더 큰 변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들어선 공단이 가져왔습니다. 전국에서 수천·수만의 여성들이 가리봉동의 가발공장을 찾아왔어요. 또 청계천 개발로 쫓겨난 빈민들도 마을의 한켠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중심가는 항상 명동 부럽지 않게 번잡했습니다. 당시는 정말 대단했죠. 1977년 국가 수출 10억 달러 가운데 이곳 단지에서만 1억달러를 차지했으니까요. 영광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공장 여성노동자들은 ‘공순이’ ‘빵순이’로 비하됐고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벌집’도 잊지 못할 풍경이었죠. 이곳 여성 노동자들은 “좋은 곳에 시집가기 위해” 정작 주소는 다른 곳으로 신고한 경우도 많았대요.

그리곤 90년을 지나 가리봉 일대는 내리막길을 걷죠. 사람들도 떠나고 업체 수도 줄었어요. 그 빈자리의 일부는 이제는 중국 사람들이 채웠죠. 나라에서도 대책을 세운다고 섬유나 의복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정보 통신 등 첨단산업으로 업종을 바꾸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주변 지역 이름도 바뀌었죠. 가령 옆동네의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지하철역도 ‘구로공단역’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요.

그리고 이제 제 이름 ‘가리봉’도 바꿀 계획이라네요. 구로구는 “과거 구로공단의 회색 이미지와 낙후되고 영세한 가리봉동의 지역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이 바뀌니 사람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는 건 정해진 이치겠지요. 그래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80년대 후반 이 곳의 풍경을 그렸던 소설가 방현석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름 속에는 지나간 시간과 공간들이 축적되어 있는데 굳이 기억을 지울 필요가 있을까요?” 구성에는 가리봉동에서 나고 자란 조신일(68) 박준용(69)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리봉동의 새로운 명칭은 16일까지 공모전 홈페이지(www.planin.kr)등을 통해 제안할 수 있습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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