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東·西갈등의 뿌리

2009.07.29 21:58

관리 조회 수:2322

이름조성호(조회수:1110)
(2004-12-04 00:00:01)

우크라이나와 터키는 지리적·역사적으로 유럽연합(EU)이 물려받은 가장 큰 두 가지 골칫거리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가까운 외국이므로 러시아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현대 러시아의 근원은 9세기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처음 형성된 슬라브연맹의 동방 확장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문화적·정치적 경계선은 불분명해졌다. 우크라이나 대선이 동서 대결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공식적으?패배한 것으로 되어 있는 빅토르 유슈첸코에 대한 대대적인 지지는 주로 역사적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가까운 서부 지역에서 나왔다. 1차대전 때까지 그 일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다.
서부지역은 종교적 예배 의식이 동양적이고 정교회 형식을 따르는 동방귀일교 신도들이지만 로마 가톨릭과 연합했다. 반면 산업적으로 쇠퇴하고 낙후한 동부지역은 정교회에 속하며 러시아어를 널리 사용한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작은 러시아로 부른다.
우러크라이나 대선을 동서 갈등으로규정하는 것은 냉전 시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단순화이며 인접국들과 함께 동부와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동서 우크라이나는 문명적으로 중첩적이고 상호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심각한 인종적 차이도 없고 또 최소한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강력한 세력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발칸반도와 다르다.
우크라이나 경찰과 군부는 사태 수습과 지지 대상을 놓고 분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와 미국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대선 결과에 관심을 가진 모든 세력은 이 나라의 민주체제와 독립을 보존하고 그 미래를 열어갈 타협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대법원의 개입과 EU의 정치적 위협을 수반한 중재안은 타협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유럽의 새로운 지정학적 구도에서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19세기 이래 우크라이나에서는 활발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나 1차대전 직전 몇년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독립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1922년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창립 공화국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지배와 그 이후 나치 침공 및 점령 하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며 1990∼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비로서 독립을 되찾으나 동부지역 소수파는 여전히 러시아와의 통합을 원한다.
EU의 고민은 도대체 자신들의 유럽 경계선을 어디로 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EU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가 EU 회원국이 되면 그다음에는 러시아가 있고 아시아는 바로 러시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과거 터키는 유럽 동남부의 주요 부분을 지배했기 때문에 동일한 문제를 제기한다. 터키는 유럽 사회가 아니다. 그 영토는 주로 아시아에 있고 말도 유럽 언어와 무관하며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고 인접국들은 중동과 카프카스 국가들이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터키의 정회원국 가입에 대해서는 일부 회원국들이 반대할 것이 분명하므로 터키 등 다른 주요 비유럽 인접국들과 EU 간의 경제·정치적 협력을 위한 특수관계로 항구적인 우월적 연대의 결성을 제안했다. 이것은 탐색해볼 가치가 있는 방안이다.
현재 미국이 그루지야와 카프카스의 여타 지역에서 의도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있고 또 EU와 함께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유슈첸코를 지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에도 위험하고 다른 모두에게도 그렇다./윌리엄 파프 美 칼럼니스트
TMSI·정리=권화섭 객원편집위원
세계일보 200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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