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조성호(조회수:1392)
(2004-04-28 00:00:01)

한국 도작농업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김포평야의 농수로는 인공적 수리시설의 장관을 이룬다. 한강은 김포반도의 북단에 이르러 514㎞에 이르는 유로(流路)를 마감하는데 이 한강물을 양수기로 끌어올려 논으로 공급하는 김포 농수로 총연장은 885㎞에 달한다. 김포평야에서는 한강이 반도의 젖줄이라는 말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김포대교 아래쪽 신곡양수장(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은 연간 1억2300만t의 한강 물을 퍼 올린다. 양수장 아래쪽에 수중보가 설치되어서 밀물 때마다 역류해 올라오는 짠물을 막아낸다. 퍼 올린 물은 폭 30m안팎의 간선수로를 따라 흐르면서 2단계 펌핑 과정을 거치면서 가압된다. 간선수로는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면서 김포평야를 건너서 강화도 쪽 통진면 대곶면의 들에 이르고 인천광역시나 부천시에 속하는 논에까지 물을 보내준다. 간선수로는 넓은 들의 가장자리를 지날 때마다 다시 폭 4∼5m 정도의 지선수로로 갈라져서 들의 안쪽으로 향한다.

지선에 이르면 수압은 낮아져서 물은 수로 밑바닥의 완만한 경사를 타고 흐른다. 지선수로는 평탄한 들판에서 조금이라도 지대가 높은 곳을 따라간다. 동력을 쓰지 않고 논바닥에까지 물을 보내주려면 지선수로의 위치는 높아야 한다. 들 가운데로 들어온 지선수로는 다시 수많은 모세수로로 갈라지면서 논으로 다가간다. 이 모세수로를 수리용어로는 지거(支渠)라고 부른다. 지거는 논두렁길을 따라간다. 농부는 이 지거에 물꼬를 뚫고 제 논에 물을 끌어 넣는다. 봄의 흙은 물을 많이 마신다. 며칠씩 물꼬를 열어 놓아도 물은 한없이 스며들지만 한강의 물은 무진장이다. 지금 흙갈기가 끝난 김포평야의 모든 논은 한강 물을 빨아먹고 있다.

김포 한강가의 신곡양수장은 조선총독부의 미곡증산정책에 따라 1923년에 설치되었다. 광복 후에 여러 차례 확장되었고 농수로도 연장되었다. 1923년 이 한강 하구에 설치된 수리조합의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김포평야는 한강의 잦은 범람과 가뭄으로 10년 중에 수확이 전무한 해가 평균 2∼3년이었고 4∼5년 정도는 3∼5분작이었고 풍년이라고 해도 7∼8분작이었다고 한다. 또 한강에 잇닿은 넓은 땅은 인간이 경작할 수 없는 갈대밭이었고 논은 고지대일수록 비쌌다고 한다.

저녁마다 강화 쪽으로 해가 저물어 조강 건너편 북쪽 하늘에 노을이 번질 때 김포 농수로 885㎞에 비치는 노을은 땅 위의 노을로 바뀐다. 노을은 붉게 빛나는 띠로 들판을 길게 건너가는데 그 저쪽 끝은 흐려진 강물 빛에 닿아 보이지 않고 수로에 내려앉은 왜가리들이 고개를 숙이고 밤을 맞는다.

김포평야의 농수로는 인공구조물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처럼 보인다. 인간에게 절실한 것들 인간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김포평야의 농수로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 쉬운 이치를 겨우 알았다.

문화일보 2004. 0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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