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멍에를 부디 풀어주소서"

2009.07.29 21:29

관리 조회 수:2220

이름관리자(sysop)(조회수:1367)
(2002-08-01 00:00:01)

"쇠목주민에게 지워진 멍에같은 고통의 세월이 50년동안 이어지고 있으니 미군 사격장과 탄약고 훈련장 등이 주민생활을 방해하는 악영향이 그것이다. 우리 선조들께서 살아온 한의 세월에 구들돌을 다듬고 난 잡석을 모아 후손들이 뜻을 합쳐 여기 탑을 조성하는 것은 통한의 시절을 회고하며 먼저 가신 선조들을 위로하고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한의 사정을 풀고자 현 주민들이 해원의 탑을 세운다."

지난 23일 찾은 경기 동두천시 광암동 쇠목마을. 마을 들머리에 높이 5m의 4층짜리 돌탑이 서 있다. 한을 푸는 탑이란 이름을 가진 탑 앞의 비석은 돌탑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유를 말해줬다.

쇠목마을은 14가구가 모여사는 오지마을이다. 동두천 시내에서 불과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지만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마을을 에워싼 미군기지(미2사단) 때문이다. 마을 쪽으로 들어서자 총소리가 요란하다. 미군의 사격훈련이 한창이다. 작은 개울 너머로 엎드려 쏴 자세로 20여명의 미군 병사들이 총을 쏘고 있었다. 길을 따라 가노라면 "이 지역은 미국 정부의 재산임. 출입 금지"라는 푯말을 발견할 수 있다.

쇠목마을 주민들의 삶은 미군기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 특히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가 두드러지게 된 것은 지난 1995년부터이다. 주민 김병규(46)씨는 자신의 땅에 집과 음식점을 짓기 위해 동두천시에 농지전용허가 신청을 했지만 이 땅이 미군 공여지라는 이유로 불허됐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야 자신의 토지가 미군한테 공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구나 미군의 폐탱크과 장갑차 8대가 마을 빈터로 실려 왔다. "포사격장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미군의 설명이었다. 졸지에 삶터에서 내몰리게 된 주민들은 경운기로 현장을 막고 가스통을 싣고 항의시위를 하는 등 격렬한 반대운동을 벌였고 결국 쇠목마을에 사격장을 짓는 것은 무산됐다.

하지만 쇠목마을의 수난은 계속됐다. 2000년초 탄약고를 짓는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 쇠목마을로 들어서는 길에 세워진 미군 푯말.


"평소에도 장갑차가 수시로 드나들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는데 포사격장이 들어선다면 어떻겠습니까. 탱크가 다닐 수 없도록 길을 좁히기로 했지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서 40일동안 돌탑을 쌓았습니다. 돌탑은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김씨는 "다 쌓은 돌탑을 누군가 무너뜨려 다시 쌓고 2개월동안 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며 "미군쪽에서 미군의 땅이므로 탑을 치워달라고 요구한다는 국방부의 공문을 두 번 받았지만 해원탑은 쇠목마을을 탱크와 포크레인으로부터 지키는 상징물이어서 절대 치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해원탑이 마을을 지켜주기 때문일까. 미군은 결국 탄약고를 부대 안에 짓고 있고 주민들은 포사격장과 탄약고의 악몽에서 벗어난 듯 싶었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쇠목마을은 지난 99년 1월 동두천시로부터 산촌마을로 지정됐다. 깊은 계곡은 그 물이 맑고 풍부한 데다 소요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들머리를 장악한 미군기지 탓에 주민들은 산촌마을에 걸맞는 모습을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4년전 쇠목마을로 옮겨온 조각가 권태원(42)씨와 나무손질에 재주가 있는 주민들은 마을 빈터 250평에 12간지에 나오는 호랑이 용 쥐 등 동물조각을 비롯한 조형물 50여점을 전시한 나무조각공원을 만들고 마을 곳곳에 해원탑처럼 돌탑 23개를 쌓는 등 마을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권씨는 "산촌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 총소리가 들리고 탱크나 장갑차가 서 있다면 어떻겠느냐. 찾아오는 사람들도 위협감을 느끼고 돌아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총소리가 그치지 않은 훈련장엔 빨간색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사격연습이 있는 날이라는 뜻이다. 김씨는 "이 마을서 태어나 살아왔지만 깃발이 올려지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다"며 "이런 날이 계속되는 한 쇠목주민들의 삶은 팍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두천/글·사진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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