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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2 23:40:42)

'고층빌딩의 복병' 태풍급 강풍, 서울에 휘몰아친다
● 도심 돌풍 '먼로風' 실체 국내 첫 확인
북한산보다 빌딩숲 바람 거세: 초속 11m이상 年1453회… 빌딩에 부닥쳐 증폭
주민들 생활 피해는: 쓰레기, 하늘로 둥둥… 비와도 우산 못쓸지경
대책 시급한 한국: 선진국선 風害영향평가… 국내 개념조차 없어

조선일보 박은호 기자 unopark@chosun.com 김성모 기자 sungmo@chosun.com

입력 : 2009.02.02 03:18 / 수정 : 2009.02.02 03:41

 

수도권에 강풍(强風) 특보가 내려졌던 작년 11월 29일, 서울 곳곳에 설치된 기상청 풍속계의 수치가 급격히 치솟았다. 북한산 중턱 해발 455m의 '승가사 측정소'에서 잰 이날의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11.9m. 등산객 몸이 휘청댈 정도였다.

같은 시각, 서울 강남의 도심 한복판에선 북한산을 능가하는 '태풍급(초속 17m 이상)' 강풍이 불어 닥쳤다. 높이 200m 안팎의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늘어선 강남 A지점에선 초속 18.9m의 바람이 측정됐다. 작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위력이었다. A지점의 해발 고도(60m)는 북한산 측정소(해발 455m)보다 훨씬 낮았지만 바람은 오히려 더 거칠었던 셈이다. 〈그래픽 참조

수도권이 태풍 '갈매기'의 간접 영향권에 든 작년 7월 20일과 7월 21일에도 같은 현상이 빚어졌다. A지점에서 이틀 사이 측정된 가장 센 바람이 각각 초속 19m를 넘어, 북한산 측정소의 기록(초속 15~16m)을 웃도는 이상 현상이 빚어졌다.
북한산보다 거친 도심의 바람

기상(氣象) 상식을 외면한 바람이 서울도심에 불고 있다. 기온이 낮은 고지대의 풍속(風速)이 기온이 높은 저지대보다 더 강해야 정상이지만, 도심 한복판에 부는 바람이 북한산 중턱보다 더 센, '풍속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서울의 고층빌딩이 바람의 세기를 바꿔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도심공기가 평소엔 빌딩에 가로막혀 정체되지만, 강풍이 불 때는 더 강력한 바람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도심 상공의 강한 바람이 빌딩과 빌딩 사이의 좁은 공간을 통과하면서 풍속이 급격하게 높아져 심할 경우 태풍과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선 이를 '빌딩풍(風·building wind)' 혹은 '먼로풍'으로 부르고 있다. 매릴린 먼로(Monroe)의 치마를 들춘 지하철 환기구 바람처럼, 예기치 못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획 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은 달콤하나 실제론 거칠기 짝이 없다.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선 "서울에도 먼로풍이 존재한다"는 말이 오갔다. 하지만 실제 현장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 그런 먼로풍이 처음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성균관대 이규석 교수(조경학과)는 1일 "최근 3년간 '대도시 먼로풍에 의한 풍해영향평가 연구'를 통해 먼로풍이 존재하며 파괴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규명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이달 중 연구용역 발주처인 기상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처음 확인된 서울의 먼로풍

이 교수의 현장조사는 서울 강남 A지점에서 2007년 12월~2008년 12월의 1년간 이뤄졌다. 이곳에 자동계측 풍속계를 설치해 매일 초(秒) 단위로 풍속을 측정한 결과, '바람이 강한 날의 경우 A지점의 바람이 해발 455m인 북한산 중턱보다 더 강했다'는 데이터를 확보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 4월 25일엔 북한산 승가사 측정소의 순간 최고풍속이 초속 17.7m였지만, A 지점은 '사람이 움직일 수 없거나, 기왓장이 뜯기는 수준'인 초속 23.4m까지 치솟았다.〈그래픽

횟수도 잦았다. 1년간 A지점에선 태풍급에 해당하는 초속 17m 이상 바람이 21회 불었고, 초속 11m 이상 강풍은 1453회로 무려 하루 4번꼴로 분 것으로 집계됐다.

속속 보고되는 피해사례

먼로풍은 거리의 풍경도 바꾸었다. 1일 오전 10시쯤 A지점 인근의 지하철역을 나서자 행인들이 맞바람을 피해 뒤로 걷는 풍경이 펼쳐졌다. 길가엔 지름 30㎝가량 가로수 수십 그루가 껍질이 모두 벗겨진 채 '허연 벌거숭이'처럼 서 있었다. 이규석 교수는 "나무가 수년간 칼바람을 맞으면서 껍질이 모조리 날아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빌딩 앞에 심어진 작은 소나무들은 밑동부터 가지가 뻗어나가는 지점 바로 아래까지 천으로 둘둘 말려 있었다. 조경기능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이 빌딩 경비원 K씨(63)는 "나무는 바람이 세면 증산(蒸散·물이 나뭇잎의 기공을 통해 대기로 빠져나가는 것) 작용이 많아져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2007년 10월에 내가 감쌌다"고 했다.

인근 B아파트의 경우 바람으로 쓰레기가 날리는 일이 빈번하자 작년 11월 단지 내 쓰레기장 위치를 바꾸었다. 이 아파트 관리원 H씨(63)는 "지저분하다는 주민들 지적이 많아 바람 영향이 적은 구석진 곳으로 쓰레기장을 옮겼고, 동(棟)마다 한 개씩이던 쓰레기장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했다.

이 아파트 단지 44층에 사는 K씨(26·여)는 "창문을 닫아도 바람소리가 거세 자다가 벌떡 깨거나, 길을 걷다 갑자기 (솟구치는 바람에) 치마가 날려 치맛자락을 잡아야 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인근 학교의 관계자는 "정문에 건 현수막이 칼바람에 찢어져 작년 하반기부터는 광목 대신 특수재질 천으로 바꿔 달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 전엔 길거리에 세워둔 오토바이와 밑바닥에 모래를 채운 주차금지 표지판이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넘어지기도 했다. 회사원 K씨(38)는 "행인이 다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인근 지하철역에서 6년째 김밥을 팔고 있는 L씨(45)는 "비가 많이 내려도 바람 때문에 우산 쓰는 걸 포기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유독 이 동네가 바람이 드세다"고 했다.

먼로풍 개념조차 없는 건축기준

먼로풍의 영향은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높이 163m 이상 초고층빌딩이 전국적으로 25개에 이르는 데다, 400m 이상 초고층 빌딩도 2016년까지 8곳이 세워질 계획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이규석 교수는 "건물을 짓기 전에 철저한 환경평가를 통해 먼로풍의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독일·일본·영국 등은 수십년 전부터 엄격한 '풍해 환경영향 평가'를 통해 먼로풍의 영향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건축 기준에 먼로풍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상태다. 서울시는 2001년 '건축 조례'를 통해 '풍동(風洞·인공으로 바람을 일으켜 공기흐름이 물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는 터널 모양 장치) 전문가를 건축심의위원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지만, 4년 뒤 이 규정을 삭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런 조례가 있었는지, 왜 규정이 없어졌는지 모른다"고 했다.

☞ 먼로풍

고층빌딩에 부딪친 도심 상공의 강한 바람이 지표면으로 급강하한 뒤 소용돌이처럼 위로 솟구치거나, 좌우로 빠르게 흐르는 현상. '빌딩풍(風·building wind)'이 정식 명칭이나 예기치 않게 불어 닥친다 해서 통칭 이렇게 불린다. 일본의 경우, 건물 높이 100m 이상이면 먼로풍의 영향이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입력 : 2009.02.02 03:18 / 수정 : 2009.02.02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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