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미술인과 주민 손잡고
산동네를 예술공간으로 바꿔
“보존·재생 관점서 환경개선”
희망근로 활용 혜택은 주민에 

 

» 감천2동 마을 전경.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날개 작품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상징물로 서 있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산동네에는 해발 200~300m 산골짜기를 끼고 외부와 고립된 채 단층 또는 2~3층짜리 슬래브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줄을 지어 있다. 계단처럼 여러 겹의 층을 이룬 모습이 마치 고대 잉카 유적 마추픽추를 연상시킨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증산도에서 갈라져 나온 태극도라는 종교를 좇아 전국에서 모여든 이주민들이 형성한 이 마을은 가난해도 이웃간의 인정과 공동체 의식이 각별한 동네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마을도 부산의 다른 산동네처럼 1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외지로 빠져나가면서 3만명을 넘던 주민이 3분의 1로 줄고 빈집이 270여채를 넘어 동네 분위기가 침체돼 갔다.
 »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가 지난해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운 민들레를 형상화 한 작품. 

이런 마을이 지난해부터 지역 미술인들이 찾아들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라는 이름의 미술인 단체는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길섶 미술로 꾸미기’ 사업 공모에 이 마을을 대상으로 한 사업계획을 내놓아 1억원의 국비를 지원받았다. 이 단체는 이 사업비를 활용해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이름으로 마을 주민, 초등학생 등과 함께 10점의 조형물을 만든 뒤, 마을 산비탈 도로에 설치해 문화공간를 조성했다. 올해도 사하구청이 문화부의 ‘관광 콘텐츠 융합형’ 사업 공모에 당선된 ‘미로(美路)미로’ 프로젝트를 직접 맡아, 마을 골목길과 빈집을 되살리는 활동에 나섰다.

진영섭(52)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대표는 “이 마을은 주택과 골목길이 수평 구조에 계단 형태를 하고 있어 앞집이 뒷집 조망권을 가리지 않고 모든 길이 서로 소통하도록 연결돼 있다”며 “주민들이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문화공간을 조성해 계속 살고 싶은 마을로 바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우선 올해 부산시에서 지원받은 1억원의 사업비로 마을 빈집 5채를 사들이기로 했다. 이들 빈집을 활용해 ‘평화의 집’과 ‘어둠의 집’, ‘빛의 집’, 북카페, 갤러리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평화의 집은 이 마을을 비롯한 부산의 산동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형성됐다는 역사성을 담고, 어둠의 집과 빛의 집은 각각 마을을 연결하는 산비탈 도로와 골목길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북카페는 마을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차를 마시고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갤러리는 마을을 찾은 작가와 관광객들이 마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바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 단체는 또 국비와 구비 등 1억2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빈집을 연결하는 골목길을 특색 있는 문화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이를 위해 목공예와 조각, 도예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이 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이를 골목길 주택가 벽에 붙이기로 했다. 또 햇볕이 잘 드는 골목길 주택가 창틀에 갖가지 꽃을 담은 화분을 걸어 놓아 화분거리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구청의 희망근로나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을 통해 화분을 가꾸고 있다.
 
진 대표는 “보존과 재생이라는 관점에서 과거 부산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마을 환경을 개선해 관광명소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올 초에는 주민 대표 5명과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의 작가 3명, 사하구 문화예술인 대표 2명, 구청 공무원 1명 등 모두 11명이 참여하는 협의체도 꾸렸다.

주민 대표 이창호(65)씨는 “처음에는 ‘라면이나 한 상자 더 주지 문화는 무슨 문화냐’며 회의적인 주민들이 적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10년 정도 꾸준히 이런 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계속되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말했다. 진 대표는 “문화예술가들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주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그 가치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며 “기업들도 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10.4.21 부산/글·사진 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