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의 해] 생물의 씨가 마른다, 인류가 위기다 < 1 > 설 땅 잃은 생명들
뿔은 약용·가죽은 의류… 희귀동물까지 희생
온난화 따른 환경변화에 북극곰 등 생존 위협
인간 탐욕에 멸종속도 생태계의 100배 이상

과거 한반도에 살던 호랑이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시베리아 호랑이는 1940년대에 이미 야생엔 40마리 미만밖에 안 남았었다. 주범은 바로 밀렵. 호랑이의 가죽과 뼈, 심지어 수염과 내장까지 약재나 의류 향수를 만드는데 쓰였다. 70년이나 지난 지금도 호랑이 밀렵과 거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연 멸종속도의 100배

판다와 코뿔소 역시 밀렵의 희생양이다. 판다의 뼈와 코뿔소의 뿔은 약용이나 조각용으로, 가죽은 옷이나 가죽제품 재료로 여전히 비싼 값에 팔린다. 특히 인도코뿔소는 밀렵꾼에게 취약하다. 여러 마리가 한 곳에 대변을 쌓아놓는 습성이 있어 이 냄새가 밀렵꾼에게 최상의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고래도 남획으로 연간 1,000마리씩 죽어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 50년간 생물다양성이 특히 빠른 속도로 감소해온 원인을 바로 이 같은 무분별한 인간활동에서 찾는다.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밀렵뿐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켜 동식물의 먹이를 없애고 '묻지마 개발'로 서식지를 파괴하는 행동은 국제사회의 멸종위기종 보호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인간활동이 초래한 기후변화 역시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약 2만5,000마리 남은 북극곰이 대표적인 동물.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북극의 모든 야생종 가운데 북극곰이 극지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동물로 평가해왔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북극곰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기후변화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극지환경은 북극곰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사실 생물의 멸종은 지구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진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실제로 지구는 생명체가 생겨난 이래 실제로 10여 차례의 멸종 시기를 겪었다. 문제는 속도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이 멸종이 일어나는 속도를 원래 자연상태보다 최소한 100배나 가속시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제적 관심으로 멸종 모면도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호랑이를 적색목록에서 '위기(Endangered)' 등급으로 분류했다. 가까운 미래에 야생에서 매우 높은 멸종위기에 처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얘기다. 적색목록의 등급은 멸종 우려 정도에 따라 총 9단계로 나뉜다. 그 중 위기와 '위급(Critically Endangered)' '취약(Vulnerable)'의 3가지를 가장 보호가 필요한 등급으로 본다. 2008년 IUCN의 적색목록에 오른 생물 4만4,837종 가운데 38%가 이들 등급에 속한다.

위기보다 높은 단계인 위급은 해당 생물이 야생에서 빠른 시간 안에 극심한 멸종위기를 맞고, 위기보다 낮은 취약은 몇 개월∼몇 년 안에 높은 멸종위기에 놓일 거라는 뜻이다. 판다는 위기, 코뿔소와 북극곰은 취약 등급으로 분류된다.

적색목록에 들어간 일부 생물은 국제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다행히 멸종을 모면하기도 했다. 173개국 정부가 멸종위기종 국제거래 협약(CITES)을 맺어 호랑이의 상업적 거래를 금지했고, 덕분에 시베리아 호랑이는 안정된 수를 유지하고 있다. 주로 러시아 동부에 살며, 몇몇은 중국 북동부와 북한 북부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야생생물기금(WWF)과 중국 정부는 면적 380만 에이커의 숲을 판다 서식지로 보호하고 있으며, 1975년 한때 야생에 600마리밖에 안 남았던 코뿔소는 인도의 엄격한 보호 덕에 2002년부터 약 2,400마리로 유지되고 있다.

자료조차 없는 5,500종

하지만 대부분의 멸종위기종은 심각한 상황이다. 바다거북유인원은 적색목록의 위급 등급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다. 바다거북은 바닷속에서 서식하다 알을 낳을 땐 해변으로 넘어오며 해양생태계의 중간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인간과 97% 유전적으로 동일한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고릴라 같은 유인원은 전염성 질병이 멸종위기를 더 가속화시킬 거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적색목록 가운데 5,500종 이상이 '자료 부족(Data Deficient)'과 '평가 불가(Not Evaluated)' 등급으로 분류돼 멸종위기인지 아닌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한국일보 | 입력 201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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