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세계화는 '어불성설'

2010.10.15 09:42

햇빛눈물 조회 수:5803

한겨레신문에 일주일에 한번씩 연재되는 중동고 철학교사 안광복씨의 글이다. 재미나게 보고 있다. 음식과 관련된 글이기에 스크랩한다. 예전에 '무한도전'이라고 하는 프로에서 뉴욕의 한 식당에 팔 한식 메뉴를 개발하고 직접 판매하는 코너가 나온적이 있다.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왜 우리들은 우리 고유의 음식인 '한식'을 해외 그것도 유럽, 미국, 일본에 알리려 할까? 아니 '알리려'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건 아닐까? 꼭 그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식'은 우리의 전통이기 이전에 우리의 '생존'이며 그냥 그 자체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지 인위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킬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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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 10.11  한식의 세계화는 '어불성설'

 

4. 차폰, 잔폰, 짬뽕 - 우리는 왜 배추김치를 포기 못할까? 

 



고추는 유럽에서 별 인기가 없었다. 유럽인들은 고추를 ‘빨간 후추’(red pepper)라고 불렀다. 하지만 고추는 후추에 비해 너무 매웠다. 게다가 고운 가루로 만들기도 마뜩잖았다. 일본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달달한 맛에 익숙한 그들에게 고추는 ‘머리가 벗겨지게 하는 맛’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마늘과 산초(山椒)는 이미 우리 음식에 널리 쓰이고 있었다. 산초는 비쌀뿐더러 손질하기도 만만찮다. 반면, 고추는 잔뜩 열리는데다가 기르기도 쉬웠다. 고추는 빠르게 산초를 대신해 갔다.

장인용이 쓴 <식전>(食傳)에 따르면, 고추가 인기를 끈 데는 김장김치도 큰 몫을 했다. 김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이다. 그런데 소금을 많이 치면 김치 맛이 써진다. 그래서 조상들은 김치에 젓갈을 넣었다. 하지만 젓갈의 비린내는 어떻게 할까? 고추는 이 물음에 답이 되었다. 맵고도 달콤한 고추는 젓갈의 비릿함을 채소와 잘 어우러지게 했다.

요새 김치는 일본에서도 인기다. 한번 굳어진 입맛은 언어와도 같다. 그만큼 바뀌기 어렵다는 뜻이다. 어떻게 해서 김치는 일본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인류학자 주영하 교수는 그 이유를 ‘매운맛’에서 찾는다. 일본인들이라고 매운맛을 피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와사비는 김치의 고추와 똑같은 역할을 한다. 와사비 덕택에 생선 비린내가 가시지 않던가. 일본 우동집에는 고춧가루같이 생긴 ‘시치미가라시’(七味唐辛子) 통이 놓여있다. 고추, 후추, 산초, 겨자, 채종, 마(麻) 열매, 진피, 7가지 재료로 만든 조미료다. 시치미가라시의 맛은 고춧가루만큼이나 맵고 강하다.

일본에서 ‘김치 붐’은 매운맛 인기와 함께 왔다. 김치는 매운 음식의 하나로 일본에 소개되었다. 반대로, 매워진 일본 음식은 우리 음식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김치의 캅사이신은 매우면서도 달고 시원한 맛을 낸다. 반면, ‘불닭’ 같은 음식의 매운맛은 고통스러울 만큼 얼얼하다. 일본에서 요리를 배운 이들은 미국에서 건너온 핫소스를 음식에 넣는 법을 익혔다. 우리 길거리 음식에는 이제 핫소스가 고추장만큼이나 익숙해졌다. 국제화된 입맛은 고추보다 매운 칠리 고추에도 거침없어졌다. 이처럼 음식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바뀌어 간다.

입맛이 바뀌는 데는 식재료 사정도 큰 구실을 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식생활개선운동’을 벌였다. 쌀이 부족한 상황, 사람들이 외국에서 들여오는 밀가루를 좋아해야 식량걱정이 줄어들 테다. 정부는 국수나 빵 같은 밀가루 음식 요리법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서민 음식은 싸고 흔한 식재료를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밀가루 음식에 익숙해진 까닭은 여기에도 있다.

그럼에도 음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입는 옷과 사는 집은 서양식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리의 밥상에는 여전히 밥과 김치가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음식은 자존심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렇지 않다면 김치보다 기무치가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플 이유도 없을 테다.

사실, 문화를 대표하는 음식도 실은 역사가 길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본의 스시는 불과 100여 년 전에 생겨났다. 스시는 에도(도쿄)에서 즉석에서 만들어 팔던 ‘패스트푸드’였다. 중국 옌지(연길)에는 ‘개고기거리’가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의 대표음식으로 개고기 탕과 찰떡, 김치와 냉면을 꼽는단다. 그러나 옌지에서 개고기거리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북적이기 시작했다. 개고기가 여행상품인 ‘소수민족음식’으로 알려진 탓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양냉면, 개성보쌈, 전주비빔밥 등은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평양, 개성, 전주 등 알려진 음식이 있는 곳은 1910년대에 이미 도시의 모습을 갖춘 곳들이다. 조선시대부터 관청이 들어서서 상가가 일찍부터 발달하기도 했다. 식당이 자리 잡기에 좋은 조건이다. 이처럼, 집에서 먹던 음식보다는 식당의 먹거리가 고향의 대표음식으로 뿌리를 내린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음식이 문화상품으로 바뀌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입맛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한국 음식이 세계적인 상품이 되려면 당연히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중국의 ‘차폰’은 일본으로 건너가 ‘잔폰’이 되었다. 우리에게 와서는 고추기름이 들어간 ‘짬뽕’으로 바뀌었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바뀐 기무치도 김치와는 다른 맛을 낸다. 그렇다면 한식의 세계화를 외쳐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차피 세월이 흐르면 우리가 전해준 음식도 그곳의 ‘고유한’ 먹거리로 바뀌어 버릴 테다.

우리에게 쌀은 이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동물사료로 쓰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반면,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형편없이 낮다. 사람들이 밥 대신 밀가루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된 탓이다. 전통적인 한국의 밥상은 우리에게서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식의 세계화는 과연 무엇을 뜻할까? 세계인의 입맛에 맞춘 한식은 도리어 우리 식탁의 국적(國籍)을 없애 버리지 않을까?

배추 값이 삼겹살보다 비싼 요즘이다. 그럼에도 배추김치를 포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일부분이다. 정말 소중한 것은 어려울 때 더 절실해진다. ‘돈이 되는 아이템’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고민하기에 앞서, 음식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다잡는 일부터 먼저 고민해야 할 때다.

배추파동은?

2010년, 많은 비 등 이상기온으로 작황이 나빠지자 채소 가격이 크게 올랐다. 배추와 상추 가격이 삼겹살보다 비싸지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중간상인이 폭리를 취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는 청와대의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배추를 둘러싼 소동이 계속되고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기사 출처 : http://news.nate.com/view/20101011n0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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